다릉시파의 뒤를 이어 前後七子가 등장하여 대각체를 무너뜨리고 복고를 주장하며 秦漢의 문장과 盛唐의 시를 표준으로 하였다. 전칠자의 영수는 李夢陽인데, 『明史』에서는 그에 대하여 “이몽양은 才思가 뛰어나고 굳어서 復古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홍치 연간에 재상 李東陽이 문단의 실권
이몽양(李夢陽, 1473-1530)하경명(何景明, 1483-1521)서정경(徐禎卿)변공(邊貢)왕정상(王廷相)강해(康海)왕구사(王九思)
이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가 문장은 진한을 숭상하고 시는 반드시 성당의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고(文必秦漢, 時必盛唐) 둘째, 모방한다는 것이 문학을
제목을 ‘시의 마음’이라 붙여 놓고 부제를 써 놓고 보니 둘 사이의 관계가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의 각 장(章)을 읽으면서 중국의 시인?비평가들과 중국인들의 ‘시’에 대한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내가 느낀 바는 그들이 시에 대
제파(諸波)의 상호관계와 종합
앞 장에서 논한 여섯 가지 이론들 사이의 상호 관계,
비평가들과 그들의 글 속에 보이는 모순 혹은 비논리성에 대한 보기 제시,
다른 이론들과의 조화와 종합.
필자의 선입견 수정
큰 테두리 내에서 여러 이론들의 발전을 연대기적으로 재 요약
1. 상이한 이론들의 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