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이 등장한다.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개벽》지 폐간의 계기가 된 작품인만큼 치열한 반골기질의 표현으로 주목된다. 그의 후기 작품경향은 철저한 회의와 좌절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 작품으로는 <역천>(시원, 1935)․<서러운 해조>(문장, 1941)등이 있다. 발굴된 작품으로는 《
<말세의 희탄>과 같은 시를 썼으며 후기에는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한 민족주의적인 시, 빈궁한 삶에 대한 공감과 연대감을 표출한 시를 쓴 당대의 대표적인 민족적 저항시인이었다. 시집으로 《상화와 고월》(1951), 《상화시집》(1973), 평전《이상화전집》(1981)등이 있다.
시우와 모 김신자의 4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상화의 부친은 상화가 7세 되던 해 별세하였고 4형제는 대구 여류사에서 명가부인의 사표가 된 모친의 강화와 백부 이일우의 훈도 밑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민족정기가 어떠하다는 것을 터득해 나갔다. 15세에 비로소 신식학교인 경성의 중학교에
들의 해결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와 비평은 과연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우선 역사를 모르고는 비평을 할 수가 없다. 작품, 창작은 역사위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상황, 역사를 반영하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