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화 (1901~1943)
이상화(李相和 : 1901~1943) 본관은 경주. 호는 무량(無量)․상화(尙火)․백아(白啞). 1901년 4월 5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큰아버지 이시우(李時雨)가 세운 사숙에서 보통학교의 교육을 받고 1918년 경성중학교 3학년을 수료했다.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백기만 등과 함께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백기만 등과 함께 대구학생봉기를 주도하였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또한 김기진 등과 함께 1925년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연구단체 조직에 가담하였으며, 그해 8월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27년에는 의열단(義烈
1)초기시의 성격- 낭만주의적 경향
1920년대 초기에 있어서 문학의 감상과 낭만, 그리고 퇴폐와 병적 관능은 유독 이상화의 문학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폐허』와 『백조』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 및 작가들의 문학 전반에 걸쳐 있었던 하나의 풍조였다. 기미독립운동의 실패로 인한 민족적
시작하면서 사상적인 분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3.1운동 직후의 현실 지향적인 문학의 경향은 쉽게 사회주의 사상과 접목되어 이른바 신경향파 문학을 낳았고, 20년대 중반 경에는 계급문학 운동으로도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의 가운데에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인 이상화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