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문장』에 「총포도」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강렬한 저항시를 주로 썼다. 베이징을 오가며 독립 운동을 하다가 1944년 1월 16일 오전 5시, 이육사는 마흔의 나이로 이국 땅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한다.
이육사는 생애를 통틀어 불과 36편의 시작밖에 남기지 않았다. 그
저항의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의 의지를 장엄하게 노래한 점이 특징이다. 1941년 폐를 앓아 성모병원에 입원, 잠시 요양했으나 독립운동을 위해 1943년 초봄, 다시 북경으로 갔다. 그해 4월 귀국했다가 6월에 기검,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 중 북경감옥에서 옥사했다. 유해는 고향 뒷산에 안장
■이육사의 생애
호 육사(陸史), 본명은 이원록(源祿)이다.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安東)에서 출생하였다.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고 1926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귀국했으나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가계와 남다른 행적으로 다대한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의 암울한 민족사적 수난의 시대를 치열한 저항의 정신으로 맞서 싸워 나갔던 대표적 민족 시인, 그가 이육사이다. 행동하는 지성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