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이 육사를 추모하고 있다. 기록된 육사의 생애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것이 많다. 그 당시로서는 그의 활동을 정확하게 밝혀줄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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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2> 억압과 맞서는 정신의 절정7)
이 시의 첫 연은 암울한 시대 상황을 묘사한다. ‘매운
Ⅰ. 이육사의 약력과 업적
이육사(李陸史)는 (1904-1944)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원록(源綠)이고 별명은 원삼(源三) 그리고 후에 활(活)로 개명하였다.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서 가호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배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 학교에서 잠시 수학(修學)하였고 1
시를 발표하며, 이어 1939년 『시학』에 「연보」, 『문장』에 「총포도」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강렬한 저항시를 주로 썼다. 베이징을 오가며 독립 운동을 하다가 1944년 1월 16일 오전 5시, 이육사는 마흔의 나이로 이국 땅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한다.
이육사는 생애를 통틀어
시작했는데 1941년에는 폐질환으로 성모병원에 입원하기에까지 이르다. 1943년 7월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 끝에 북경으로 압송되는데 이 때의 체포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1944년 당시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친척인 이병의가 그의 사망신고를 했다.
이육사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이육사는 1930년대 민족의 시인, 志節(지절)의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그는 처음부터 남다른 시인이었다. 첫 출발이 문학이 아니었고 독립운동이었다. 짧은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다가 결국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이다. 그에게는 뚜렷한 습작기가 없었다. 원래 목표가 문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창작을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