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남언경(南彦經)이요(李瑤)장유(張維)최명길(崔鳴吉) 등에 의하여 수용(受容)되어 정제두(鄭齊斗)에 의하여 양명학파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이종휘(李鍾徽)이광사(李匡師)이충익(李忠翊)정동유(鄭東愈)이건창(李建昌)이건방(李建芳)박은식(朴殷植)정인보(鄭寅普) 등으로 계승발전되었다.
이충익, <너에게 묻는다>
(나)
쪽박 함부로 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따스한 사랑 건넨 사람이었느냐
장독 함부로 깨지 마라
너는
믿음을 지키려 한달 열흘 굶어 본 사람이었느냐
꽃 함부로 꺾지 마라
너는
누구의 커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적 있는 사람이었느냐
최범영, <너에게 이른
Ⅰ. 서 론
우리나라는 입시지옥이라고 할 만큼 청소년들을 학교교육으로부터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아침 일찍 학교에 가려면 정말로 힘들어 아침식사도 늦추는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9시 등교에 관한 교직원회의를 소집하고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해 결정했다. 등교시
◎ 양명학의 배경
14세기 몽고(元) 통치의 점차적인 쇠퇴는 황족 내의 분열에 의해 촉진되었으며, 1340년대의 반란과 1351년에서부터 1353년에 이르는 여러 중요한 반란 등은 원元의 패망을 재촉하였다. 한편 1333년이래 15년간 빈번히 일어난 기근은 황하의 범람에 의해 절정에 이르렀다. 홍수와 기근은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