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분과 심사위원이 됨.
1950년 6.25동란 중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 12월 국방군의 북진을 따라 문화계 인사들이 이태준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 이태준이 평양에서 만난 애인과 그 자식만 남하시킴.
1952년 남로당과 함께 숙청될 위기에서 소련파 기석복의 후원으로 살아남으나
소설의 구조로 변용시켜 놓았다. 박세현, 위의 책, p.47
그의 초기 소설들은 주로 농촌 삶에서의 목가적인 사랑을 취급하고 있다. 그의 초기의 몇몇 작품들, 「동백꽃」, 「봄봄」, 「산골」 등에는 탄력과 활기가 넘쳐난다. 대개가 지주집 자식과 종의 사랑이라는 계층적 대립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상의 위임통치 문제, 만주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 등인데,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를 제어하기 위한 국제정세를 두고 볼 때에 극동은 그 위기론에 의하면 1935년으로부터 점차 성숙되어서 1936년에 폭발된다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극동에서 <위기! 1936년!>은 그 해에는 폭발되지 않고 1년을 지나서 1937년 7
품고 전통적 문화와 정신을 동경하는 계층으로 크게 대별된다. 「고향」을 비롯하여 「아무 일도 없소」, 「불우선생」, 「실락원이야기」, 「순정」,「삼월」등의 주인공이 전자의 성격을 대표한다면, 「까마귀」, 「패강냉」, 「무연」등의 작중인물은 후자의 특징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문인들이 대거 월북하는 사태로 불거지면서 일시적 봉합은 깨지고 만다.
Ⅲ. 이태준의 작품세계
1. 이태준 문학의 시기구분
상허 이태준은 신경향파 문학이 대두하던 1925년부터 6·25 직후까지 약 30년에 걸쳐 단편 60여 편과 중·장편 18편을 발표한 한국현대소설사의 대표적 소설가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