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이태준의 `패강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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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문학]이태준의 `패강냉`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작가연보

2. 작품 세계
이태준의 문학사적 위상
이태준의 소설관

3. 줄거리

4. 문제제기
본문내용
1. 작가연보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보장면 산명리에서 아버지 이창하와 어머니 순응 안씨 사이의 1남 2년 중 장남으로 출생. 족보에 의하면 이태준의 본명은 규태. 호는 상허(尙虛). 아버지 이창하(1876~1909)의 字는 문규(文奎), 호는 매헌(梅軒).
철원공립보통학교 교원, 덕원감리서 주임을 역임한 개화파.

1909년 개화파였던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 그해 8월 아버지의
죽음으로 귀국중 함북 배기미에 정착.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수학.

1912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외할머니를 따라 철원 용담으로 귀향 친척집을 전전함.

192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고학생으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받음.
스승으로 가람 이병기, 같은 학예부원으로 상급반에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등이,
하급반에 박노갑이 있었음.

1924년 6월 동맹휴교 주모자로 4학년 1학기에 퇴학. 이어 휘문고보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감.

1925년 일본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이 작품은 시대일보에
7월 13일 발표됨), 문단에 나옴.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 출신의 이순옥과 결혼

1933년 박태원, 이효석 등과 ‘구인회(九人會)’를 조직. 경성부 성북정 248번지로 이사. 이후
월북 전까지 이곳에서 거주.

1939년 ‘문장’의 편집자 겸 소설추천심시위원으로 활동. 이후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

1948년 8.15북조선최고인민회의 표창장 받음.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이 됨.

1950년 6.25동란 중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 12월 국방군의 북진을 따라 문화계 인사들이 이태준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 이태준이 평양에서 만난 애인과 그 자식만 남하시킴.

1952년 남로당과 함께 숙청될 위기에서 소련파 기석복의 후원으로 살아남으나

참고문헌
∙ ‘이태준 소설 연구’ - 이병렬 著(평민사,1998)
∙ ‘월북작가 이태준 소설의 이해’ - 문충환 著(백산출판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