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의 경우, 조선인 자본가 중 예속자본가를 제외한 자들만이 민중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운동 차원에서 견인되어야 할 존재로 고려되었다. 이승렬, 「일제시기 민족자본가 논쟁」, 『역사비평』(계간 9호), 1990 여름.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경제의 발전방향은 자본주의적 발전밖에 없다” 안
문제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물론, 제 2차 세계대전에 임하는 연합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합국이 영토 확장을 기도하지 않음은 물론 식민지 국가의 해방-독립을 지향한다는 정신을 선언의 형태로 공포하였다. 그리고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을 결의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 계급주의를 지향한 『씨뿌리는 사람』을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정신적인 동조자를 찾아 나서서 먼저 배재고보의 동창생인 박영희, 이상화, 안석주 및 상기 네 사람을 더 가담시켜서 구성원들의 이름 두문자를 딴 PASKYULA를 발족시
일제의 군국주의를 지지하고 찬양할 것을 요구했다.
(2) 암흑기의 시문학
이 시대에서는 항일운동을 하다가 옥사하면서 발표될 수 없는 작품을 남긴 시인도 있고,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침묵하면서 지낸 시인도 있고, 일제를 찬양하는 친일의 문인도 적지 않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이민시로 일
식민지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 유미탐구에 있다. 초기 시에서 영랑은 ‘내 마름’, ‘소색이는’, ‘얄개’, ‘실비단 하늘’ 등 새로운 조어와 전라도의 사투리를 발굴하여, 거기에다 그의 독특한 언어미와 전통적 판소리 율감의 심화 등을 더하였다. 영랑시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과거 지향성을 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