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을, 국민을 계도하는 관료로서 국가기구 내에 포섭하고 이들이 종교로서 신도행사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한편, 국가신도의 모든 시설과 모든 국가신도 종사자들의 활동을 제사집행에 한정했다. 이는 1889년의 제국헌법에 의해 명문화되었다. 이에 따라 1890년 교육칙어가
일본민족의 물질적・정신적인 측면이 끊임없이 군국주의에 동원・악용되어 왔다.
다섯째, 민족독립 확보라는 국민적 요구는 강한 구미세력에 굴복하는 한편으로, 그 대신 그린 여러 민족에 대한 침략으로 나아간다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마침내 전쟁과 침략 없이는 일본국가ㆍ자본주의가 존
1845~1850년대에 이르러 영국을 필두로 하여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의 구미(歐美) 제국들은 아시아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특히, 아편전쟁(1839~1842)에서 영국이 청나라를 굴복시킨 것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막부에서는 아편전쟁 이전인 1825년에 쇄국정 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발표하였
일본 측의 배반`으로 인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건데 한일관계에 있어서 과거사 마찰은 90년대 이래 그 심도와 빈도에 있어서 더욱 격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의 종언과 공산권의 몰락에 의해 종래 한일관계의 구심력으로 작용하였던 반공연대의 접착제가 상대적
지방의 다이묘(大命)가 자신들의 영지인 한(藩)을 통치하고 있었다.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일본을 경험하고 막부정권의 기초를 마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막부는 농민, 지방영주인 다이묘 천황 등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정책을 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