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조시기
누르하치는 선조 22년인 1589년에 건주삼위 전체를 통일하였으며, 1591년에는 두만강 유역의 여진인 일부를 복속시켰다. 이때 조선의 번호였던 여진인의 상당수가 건주여진에 속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중, 건주위 여진인들이 산삼을 캐러 조선의 영내에 들어왔다가 죽는 사건이 생겼다. 이때
광해군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명을 지원하게 하되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명령하였다. 결국 조명연합군은 후금군에 패하였고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광해군은 명의 원군 요청을 적절히 거절하며 후금과 친선을 꾀하는 중립
건주여진은 세력이 증대되어 명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이는 국경을 접한 조선에서 볼 때 위협적인 세력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광해군은 즉위한 이후부터 건주여진을 견제하게 된다. 이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여진이 조선을 침공한다면 상당히 버거운
임진왜란이후 명의 처지가 더욱 고단해지고, 누르하치가 이끄는 건주여진이 주변의 여진 부족들을 아울러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면서 달라져갔다.
그들의 강성함을 인식하면서 조선은 명과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하였다. 대표적인 것의 광해군의 중립 외교 노선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누르하치는 ‘왕’이라 칭함.
② 국내 -전후 복구사업
○ 조정은 동인, 서인, 북인, 남인으로 분열.
○ 전쟁으로 인해 전국토가 황폐화 백성들은 생활고(生活苦)에 시달림.
○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 전쟁 이전으로의 복구가 시급한 상황.
2. 즉위과정
○ 1575년 선조의 후궁인 공빈(恭嬪) 김 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