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보고의영향장보고(張保皐)는 9세기 신라 해양활동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淸海鎭)을 통해 유사 이래 가장 광활한 해양 활동의 무대를 개척하고 동북아시아의 해상 통상로를 개척, 해외무역 전진 기지를 개척하였다. 그는 민간 무역을 통하여 국부(國富)
장보고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상 바다를 다스리는 자가 세계사를 지배한다는 원리를 몸소 실현한 문자 그대로 ‘해상왕국의 건설자’인 것이다. 따라서 장보고 연구는 우리 뿌리에 관한 연구이며 우리나라 대외경제 전략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장보고의해상활동에 대해 알
신라는 등주적산으로부터 황해를 직접 횡단하는 항로가 활용되어 사무역 활동은 증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 즉 나·당간의 각 국가가 가지는 정세의 변화는 항해술, 조선술의 발달과 아울러 장보고의해상활동은 동아지역의 해상권을 충분히 장악 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을
장보고는 810년대 초, 고향에서 같이 자라나 무예를 익혔던 아우 정년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게 된다. 당시 신라는 골품제도로 혈통에 의해서 모든 정치적사회적 활동이 제약을 받는 사회였다. 반면, 당나라는 세계 각국의 유학생과 무역상인들을 받아들여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게 한 개방적
장보고 세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적당한 지역이었다. 특히 재당신라인사회와 청해진 두 곳은 그 나라의 변방에 위치하여 중앙정부로부터의 지배나 간섭이 소원하였고, 특히 산동반도는 오랫동안 번진의 발호가 극심한 곳이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신라와 당을 이어주는 해상교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