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동포에게서 자신의 여권이 한국 정부에서 발행한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재일교포 2,3세가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데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고 하면서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 … 중 략 … ≫
Ⅱ.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 재일한인, 재일유학생)의 성격
재일조선인은 만주나 노령의 조선인과 여러가지 면에서 특성을 보이고 있다.
만주나 노령의 조선인이 북부지방출신이 많은데 비해 재일조선인의 출신 지역은 남부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이주 목적도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노동이나 학업이다
1920년대 ~ 1930년대 초반
-1923년 간토 대지진 : 일본 사회 내 위화감 형성과 일본 군경 및 민간인에 의해 6천여 명의 재일한인 학살이 발생.
-1929년 전 세계적 대공황 : 조선 경기 불황으로 인해 일본으로의 취업위주가 대폭 증가하며 이는 1930년대 전반에 절정에 달함.
1930년대 중반 ~ 1940년대 : 전시
재일동포의 형성에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재일동포 형성의 기점은 191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후 토지조사사업(1910-18)을 통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일본으로의 이주를 시작하였다. 19
재일조선인
재일조선인은 개항이후부터 일본에 거주한 조선인을 의미한다. 개항 이전의 시기에도 일본에는 조선인이 거주하였으나 이들은 조선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생활해야만 했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개항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항직후에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