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가 50대에 『소학』을 펴냄으로써 완결되었다. 송나라 임안(臨安) 출신으로 자는 자징(字澄)
이다. 지형주(知衡州), 원주지부(袁州知府) 등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주희를 만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성리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청지는 일찍이 『훈몽신서』(訓蒙新書)라든지, 『계자
교육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고, 그 앞에는 나의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도전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향해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2) 학업 시절
가정 내에서의 기초 교육을 거쳐, 나는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이어받을 유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아침이 새벽으
전통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제사 준비를 하며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가문의 역사를 배웠다. 이런 활동들은 나에게 가문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했으며, 나의 어린 마음에도 가문의 전통과 명예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심어주었다. 이렇게 엄격하지만 알찬 교육
. 태교사상은 태아를 잉태하기 이전부터 부모로 하여금 임신을 위한 정성과 신체적, 심리적 준비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의 부성태교도 중요시 하였다. 임신 3개월부터는 본격적인 태교를 실시하는데, 태중태교 10개월을 출생 후의 10년간 교육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
교육보다 낫다 고 하여 태중교육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잉태시 부친의 청결한 마음가짐은 모친의 10개월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라고 하여 태교가 임부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남성에 있어서도 태교는 결혼 전부터 강조되었다. 즉 "소학"에서는 [保情-보정]이라고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