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반란의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주요 지역에 대한정부의 지배를 강화하였다. 신책군(神策軍)의 규모를 늘리고 감군사(監軍使) 제도를 설립함으로써, 중앙의 권위를 재천명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였다. 또한 규정이외의 진봉(進奉)을 장려함으로써 중앙재정을 현저히 회복
절도사에는 문관 출신을 장성 밖의 절도사에는 무관이나 이민족을 임명하였는데 이림보가 재상직을 맡고부터 이것은 바뀌었다. 과거출신의 관료가 대군을 거느리는 절도사가 되는 것을 꺼려한 이림보는 대신 중앙관계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무관이나 이민족을 장성 안의 번진인 삭방․하동․
중앙정부에 항거하던 번진과의 싸움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당 중흥의 군주로 일컬어지는 헌종(806~820년)은 국력을 다하여 교번 토벌에 전념하던 때이기도 하다. 특히 원화 10년(815년)에서 14년(819년)에 이르는 기간은 반당(反唐) 최대의 강력한 번진인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가 세운 평로치청(
번진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도독부와 주의 관계를 통해 당 전기의 지방행정제도를, 그리고 후기의 그것은 내지번진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II. 전기 지방행정제도 - 都督府와 州
1) 도독부와 주의 관계에 대한 두 견해
당왕조의 도독부와 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
대한 전체적인 체계가 잡히지 않은 나로선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였다.
唐末~五代~宋初, 즉 8세기 후반에서 10세기에 이르는 시기가 중국사에서 하나의 큰 획기라는 점은 1922년 일본의 內藤湖南이 당과 송 사이에 보여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