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다루고, 혁명파의 핵심 인물인 삼봉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조선건국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역성혁명론’과 현인정치에 입각한 민본정치의 사회적 구현이라는 맥락에서 ‘유교 정치’, 그리고 사상적 변혁이 요구되던 시대적 배경에서 주장된 배불사상으로 크게 구분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사상과 주례를 바탕으로 하여 역성혁명을 이뤄냈다. 조선건국 후에는 군대를 정비하고 통치조직의 목적과 제도를 설계하면서 제대로 된 국가와 정통적 유교정치를 제도화시키는 기초를 마련하는데 진력했다. 이와 같은 점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삼봉의 조선조의 제도정치의 기틀이었던 성리학을 기본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태종의 마음이 이미 세자 양녕대군에게서 떠난 것을 알게 된 신료(臣僚)들은 그를 폐위할 것을 청하는 소(疏)를 올려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 때 태종에게는 왕후
세종대왕의 생애
조선 4대 국왕 (1397 ~ 1450)
태종의 3남으로 재위기간 32년
1412년 충녕대군으로 임명
1418년 왕세자로 책봉
동년 8월에 태종의 양위로 즉위
※ 학구적인 세종의 심각한 건강
과도한 육식과 대외활동기피
과도한 연구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수면부족
당뇨합병증과 비뇨기질환,
삼봉의 교육사상 연구는 상당히 부족한 선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서 보면 삼봉의 비극적인 말로가 그에 대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치적 갈등과 이방언과의 대립에 따른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당대에서 할 수 없게 했고, 그 영향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