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가에서 태어났다. 4대 독자의 장남으로 어머니의 꿈에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아명은 지용(池龍)이라 지었고 그 음을 따서 芝溶이라고 했다.
정지용은 누이 계용을 무척 사랑하였다고 하는데 휘문고보 2년때 쓴 첫 작품 <三人>에 그 점이 드러나고 <향수>에서 '검은
정지용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정지용전집』이 간행되고 ‘지용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지용문학상’도 제정되었다.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과 그가 다녔던 대학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고, 정지용에 대한 기념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중
고향의 의미로 해석 할 수도 있고, 여러 갈래의 시사를 정리한 자연이라는 의미로 해석 될 수도 있으나, 청록파에게서 새롭게 해석되는 자연은 그들 나름대로의 자연을 통해서 한국시를 한 차원 높은 위치로 끌어 올렸다는데 의의가 있다 하겠다. 박두진의 자연은 서구적, 에덴적, 이상적, 의지적, 미래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이미지즘으로 꼽힌다. 우리 조는 이에 반하여 심리주의 비평으로 유리창에 드러난 심리를 읽고자 시도해보았다. 또한 작가의 역사 전기적 배경을 떠나 유리창 속의 이항대립을 통해 구조주의 비평 방법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4년 과정을 마치고 1914년 3월 25일 졸업한다. 학교를 다니던 도중 12세 때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에 사는 송재숙과 결혼하였다. 정지용의 부친이 정지용 처가의 친척인 송지헌의 농장에서 소작을 하고 정지용이 휘문고보를 다녔을 때 부친이 마름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