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라고 판단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불교세력의 힘을 빼기 위해, 그 동안 불교계에서 비주류이고, 정치와 관련이 적었던 선종 족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때 최충헌이 지원한 인물은 정각국사 지겸(志謙, 1145~1229)과 원진국사 승형(承逈, 1171~1221)이었다. 최충헌에 이어 최우가
의 사원들이 중심적인 도량으로 발전하였다. 불교의 중심무대가 개경에서 지방으로 옮겨졌다고 하는 사실은 단순한 지역적인 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내용이나 성격에도 변화를 초래하였다.
송광산 수선사나 만덕산 백련사는 바로 이와 같은 예이며, 이들은 결사운동이 일어난 수많은 사
의천 직계의 법손인 흥왕사의 요일, 영통사의 각훈 등에서 균여의 계통인 개태사의 수기, 천기 등으로 법계가 교체되면서 화엄학의 내용이나 성격이 바뀌어 의천에게 비판받았던 균여의 화엄학이 재평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도 역시 의천 직계의 덕소 등에서 백련사의요세로 법계가 바뀌
신심 장한 한 불자가 서울역 광장을 걷는다. 목에는 만(卍)자 목걸이를 걸었고 손목에는 단주를 찼으니 보통불자는 아닐게 분명하다. 이곳에 늘상 포진해 있는 극성스러운 종교의 전도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여지없이 신심 장한 불자에게로 접근한다. 그리고 묻는다. 2천 5백년에 죽은 불교를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