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사와 백련사를 중심으로 이 시기 신앙결사의 면모를 알아보고, 당시 집권층이었던 최씨정권과의 관계와 당시 불교계의 과제를 통해 신앙결사의 의미를 찾아볼 것이다.
1. 결사운동의 배경
12세기 후반부터 고려는 급격한 전환기를 맞았다. 정치적으로 무신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여 개
수선사를 계속 지원하고, 최충헌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적대관계에 놓였던 화엄종과 법상종의 사찰에도 지원을 하였다. 최우는 고종 8년(1221)에 법상종 사찰인 해안사(海安寺)에 은사향완(銀絲香垸) 100좌(座)를 보시하였고, 고종 10년(1223)에는 화엄종의 사찰 흥왕사(興王寺)에 황금 200근으로 만든 13층
고려와 조선에 들어서는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고 탄압당하기도 하는 등 왕조의 특징에 따라 그 위치가 다르게 변하기도 했다. 이렇듯 불교는 사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한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 사상에 대한 개념과 흐름 파악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 보
Ⅰ. 고구려(고구려시대)의 불교
고구려는 B. C. 37년 小水(渾江)를 중심으로 消奴部, 絶奴部, 順奴部, 灌奴部, 桂婁部 등 5部族(진단학회, 1981 : 226)이 세운 국가로 28왕 705년간 유지되었다.
太祖王(53~146?) 때에 桂婁部 高氏의 왕위 계승권이 확립된 이후 故國川王(179~196) 때에 이르러 왕권의 강화와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