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예제의 으뜸인 종묘
삼국시대에 중국의 예제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잘 알수 없지만 고려시대에는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계를 만든 성종대에 나라의 여러 제도를 중국식으로 개편하면서 중국식으로 5례를 수용하였다고 ‘고려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의 제도를
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 원리는 "삼재론 중심의 음양 오행론"이 되었다.
Ⅱ.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건축이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을 이루는 영조물로써 그 생활환경과 양상에 따라 인위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건축은 그 환경뿐만 아니라 그것을 영위하는 사람의 풍속과 성향 등을 잘 나타낸다.
I. 종묘의 창건 배경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지 3년째 되던 해인 1394년 12월에 종묘를 기공하여 이듬해 9월에 준공하였다. 준공 후 개성으로부터 선대 사조(四祖), 즉 목조(穆祖), 익조(翼祖), 탁조(度祖), 환조(桓祖)의 신주를 한양으로 옮겨 신묘에 봉안하였는데 , 이것이 조선 종묘의 시초이다.
고고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한민족의 장묘 문화는 신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지배계층들이 만든 지석묘와 같은 분묘 형식으로 나타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는 차츰 각기 고유한 장묘문화를 형성하였는데, 고구려는 초기에 석총(石塚)을 많이 썼다. 그
제례를 올리며 후손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2]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1) 향대청 일원
향대청은 향청과 집사청으로 구성된 건물이다. 향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축문․폐백과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고, 집사청은 제사에 나갈 집사자들이 대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