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예회는1937년 4월 상순부터 조선과 일본의 문예가 약 삼십명을 망라하여 동회를 조직코자 준비를 진행했는데, 이 회는 제1부 및 제2부로 나누어 음악, 연극, 영화, 라디오 등 문예와 연예 각 방면을 교화 선도하여 비속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럼으로써 총독정책의 하나인 사회 교화의 목적을 달성
애국자로서 포장된 채 평가되어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제대로 알고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 제1의 신문자리에 위치해 있는 조선일보의 사장 이였던 방응모라는 인물의 친일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심층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1. 서론
1919년 이후 일제의 대 한반도 정책은 소위 ‘문화정책’ 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이는 독립을 염원하는 조선인들에 대한 정신적 동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1910년 이후 철저하게 억압 위주였던 언론 정책 역시 다소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정하게 된다. 이미
담아내는 그릇을 통해서 그 ‘언론인’이라는 사람들은 시대를 어떻게 읽어내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언론의 두 핵심을 담당했던 동아일보의 김성수와 조선일보의 방응모의 일대기와 그들의 행태를 조사해보며 그들의 시대읽기와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Ⅰ. 일제의 친일파 육성과 조선民내에서의 자발적 형성
일제는 동화주의 라는 식민지배 명분론을 선전하기 위하여 친일세력을 육성하고 이용하였다. 식민지배에서 무력적인 억압이 즉각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족을 분열시키고, 또한 식민정책에 동조하는 집단을 양성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