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 이것은 종래 우리나라 선유(先儒)들이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조선유교연원■■의 저자 장지연(張志淵)은 “단군 말엽에 은나라 태사 기자가 주(周)를 피해 들어와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도로써 동방을 교회(敎誨)하였다. 홍범은 … 유교의 근본이다. … 친히 조선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양성불평등의 현상에 대하여 혹자는 “유교적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이에 현재 가장 빈번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유교적 관습과 제도-족보, 제례, 재산 상속문제와 여성의 정절-들을 중심으로 그 연원을 밝혀보고자 한다.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양성불평등의 현상에 대하여 혹자는 “유교적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이에 현재 가장 빈번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유교적 관습과 제도-족보, 제례, 재산 상속문제와 여성의 정절-들을 중심으로 그 연원을 밝혀보고자 한다.
1. 중국유학의 연원과 전개
-고대 유교문화의 태동과 형성
유교문화는 고대 중국의 하․은․주 라는 삼대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삼대문화 이전에도 요임금을 대표로 하는 당 왕조와 순임금을 대표로 하는 우 왕조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다. 요와 순은 고대
유교 윤리가 엄격히 지배하고 있는 남성중심의 조선사회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녀들은 ‘해어화(解語花)’라는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꽃(花)’ 즉 ‘물(物)’이었고, 당대 지배층이자 다수자였던 양반 사대부들을 위한 풍류와 유희, 향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