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큰 인연을 가진 땅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 이를 근거로 삼아 간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만큼 무모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발해가 망한 이후로는 중국 땅이었던 간도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발해가 망한 이후 그 곳이 확실한 중국의
대한 대책을 논의하던 끝에 그들로 하여금 인수개간원서(引水開墾願書)를 제출케 하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의 중앙정부와 청국(淸國)사이에 정식 외교적인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조치는 아니었고, 다
시기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른바 ‘코리아드림’ 이라고 하여 조선족들에게 한국은 말이 통하는 모국이면서 한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비춰지면서 한국으로의 입국이 급증하게 된다. 강용찬(2001). [중국조선족동포의 삶과 민족경제]. 사회과학연구 제 5호 p. 65-107
5) 문화
(1) 의복
조선족 사기사건으로 냄비뚜껑 같은 우리의 민족감정을 발깍 뒤집어 놓으면서 일간지 사회면의 머리를 장식하더니, 이제는 간간이 조선족 포함 중국인 밀입국 사건으로, ꡐ중국노동자 불법체류사건ꡑ 등으로 신문 구석에 자리잡은 사람들, 몇 년 전 정부가 제정한 재외동포에 관한 기본법의 적
대한 분쟁이 있었던 것은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근대 이후 서양의 동아시아에 대한 침략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 역시 민족주의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된다. 서양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