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피로인의 쇄환과 함께 문화를 통한일본 교화를 조선통신사 파견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뛰어난 조선의 문화를 일본에 보여줌으로써 전쟁 재발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문화적 우월감을 통해 전쟁으로 무너졌던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외교적 실무와는
조선 피로인의 쇄환과 함께 문화를 통한일본 교화를 조선통신사 파견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뛰어난 조선의 문화를 일본에 보여줌으로써 전쟁 재발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문화적 우월감을 통해 전쟁으로 무너졌던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외교적 실무와는
일본과 조선의 대등한 관계가 계속 지속된 것이 아님을 은근히 암시하는 대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코 일본과 조선이 대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관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서술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7종 역사교과서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에 의한 조선으로부
일본과의 우호관계 유지는 국가안위에 절대적인 선행조건이었다. 그러므로 통신사 파견의 문제를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보충>
결국 이러한 의미에서 1636년 통신사는 동아시아 국제환경의 격변 속에서 조일 양국 서로가 청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외교체제를 수립한 국제적 사건
조선통신사의 왕래에 따른 근 200년 간 일본과 한국은 이 지역의 평화와 선린관계를 지속했으며, 동시에 여태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문화교류 차원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조선은 사대교린 정책으로 중국의 선진문물 수용과 연행사 파견을 통한 교류를 하였고, 한편 일본에는 통신사를 파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