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은 조성기 이후 침체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어려서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여 사마시에 여러번 합격하였으나, 몸에 병이 생겨서 환로에 오르지 못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저서로 <<拙修齋集>>이 있다.
①유폐된 사대부의 삶
젊은 나이에 얻은 고질병으로 일찍이 집안에서
갈등을 중심으로 공통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창선감의록에서의 주된 갈등은 계후문제이나, 처첩의 문제도 들어가 있으며 이는 사씨남정기의 주된 갈등양상인 처첩갈등과 중복된다. 그렇기에 두 작품의 주된 갈등양상만 다를 뿐,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가문 내의 갈등이라는 점에
증조부인 김장생과 조부인 김집으로 이어지고 이가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에게로 전수되었는데, 북벌운동의 주역이 바로 김집을 필두로 한 이들 산림들이었다. 이후 북벌운동은 효종의 죽음으로 무산되었지만, 그의 사상적 경향이 이러한 서인계 인물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물에 의해서만 서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수많은 인물이 화진의 삶과 관련되거나 혹은 화씨집안의 사람들과 관련되어 36개의 서사단락으로 복잡하게 진행된다.
지금부터 가문소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17세기에 가부장적 질서를 배경으로 나타난 <창선감의록>에서 가
조성기가 소설을 창작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작품인지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선감의록> 한문본 서두에 있는 기록에 대한 논란이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내가 근자에 담병을 앓아 병을 다스리느라 가만히 누워 부녀들로 하여금 여항간의 국문소설을 읽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