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기독교로의 복귀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16세기에 시작에서 17세기 초 절대주의 시대의 개막까지 지속된 운동이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문예상의 르네상스, 서부 유럽에서 일어난 정치적 르네상스를 배경으로 해서 발생한 마지막
John Huss(1375?~1415)가 개혁을 부르짖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루터에 의하면 위클리프와 후스는 교황의 생활에 대해서만 싸웠지만 자신은 로마교의 그릇된 교리를 공격하여 그들을 패배시켰다고 말한다.
아울러 종교상 또는 교회 제도상의 피해가 루터개혁운동의 직접적인 원인과 동기가 되었다
<플라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귀족 출신. 40세경 아테네 교외의 아카데미아에 학교를 열어 교육에 임하였으며, 또한 많은 저작(30권이 넘는 대화편)을 썼다. 그의 철학은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당시의 유물
종교회의 운동은 그 때까지 교회가 받아 들였던 기독교 교리에 관해서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존 위클리프(JohnWycliffe)와 존 후스(John Huss)같은 이들은 교회생활 뿐만이 아니라 교화가 지켜온 교리자체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또 어떤 자들은 가난하고 짓밟힌
개혁자들의 집단적 운동은 점차 하나의 범시민운동으로 번져서 중세교회의 단일체제에 커다란 위협을 주었다. 거기에다 교회의 위신은 교황청의 분열로 땅에 떨어졌으며, 교황청의 지나친 과세 및 면죄부 판매는 일반시민의 원망을 자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부조리는 16세기 유럽대륙 중에서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