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내에서도 여러 분파가 성립되어 갈등을 일으킨다.
해방과 함께 가장 먼저 조직된 문인 단체는 조선문학건설본부(약칭 문건)로, 얼마 후 임화를 주도로 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1945.8.18)가 결성된다. 그러나 임화의 사상적 성향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던 민족 계열과 좌익 계열의 문인들은 각
Ⅱ. 本論
1. 文壇의 狀況
1)政府樹立 전의 문단 상황
左翼系列
①朝鮮文學建設本部 - 1945년 8월 16일, 感激의 하루가 지난 후 종로 한청빌딩에 자리잡고 있던 朝鮮文人報國會의 간판이 내려졌다. 일제 침략 세력에 함께 同調해 온 조선문인보국회는 많은 문인들의 이름 앞에 친일 문학이라는 烙印을 남
2. 식민지 문화 청산과 자기 비판
해방 직후의 문단 조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 것은 식민지시대 문화 잔재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문학의 건설이다. 민족문학의 건설에 대한 논의는 이념적인 개방상태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훼손된 민족정신을 바로잡기 위한 식민
좌익 아니면 우익이라는 양자택일적 흑백 논리가 횡행한 시기였다.
문학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가 없었다. 해방기 문단에서는 독립된 민주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고 이것이 문학인들의 정치 참여의 명분으로 작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해방기의 문학운
문단의 움직임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빠르게 대응하는 좌익문단과 견주어 한 걸음 처진다. ‘프로문맹’이 결성된 다음날인 9월 18일, 일제 시대에 순수 문학을 지향하던 민족 문학 계열과 해외 문학파 계열의 작가들인 박종화ㆍ오상순ㆍ김영랑ㆍ이하윤ㆍ김광섭ㆍ이헌구ㆍ변영로ㆍ양주동ㆍ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