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주희와 지역공동체
지방자치를 위해 주희의 시대와 후대에, 주희와 그 외의 다른 성리학자들에게 열정적인 지지대 역할을 한 네 가지 중요 기관이 있다. 그것은 지역서원, 향약, 사창, 성리학에서의 선조들을 모신 사당이다. 향약과 사창, 서원의 특성과 기능적인 면은 근본적으로 지역적이다. 각
그리고 그 정체의 이유로 조선의 유학을 지적한다. 하지만 19세기 조선에는 자본주의적 맹아가 일어나고 있었고, 실학의 발달도 이루어지면서 근대사회로 가기위한 태동이 이루어졌다. 또 근대화과정에서 서양의 학문만을 숭상하고 유학은 도외시하게 되어 효의 개념 상실, 가족해체 등 여러 가지 문제
주희(朱熹) 는 2정자(二程子:程顥와 程의 형제)를 계승하여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정좌(靜座)를 권하였다.
궁리란, 이른바 격물치지(格物致知)이며, 그 방법으로서는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 (明辨) ·독행(篤行)을 들었다.
거경과 궁리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또 사람
그리고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의 성리학이 일본으로 전해져 성리학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촉발하게 되어 덕천막부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문화변동의 전체적 관점에서 성리학적 유교문화와 근대화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이해가 기초될 때, 문화의 각 부분
1)훈고학
훈고학의 발전배경: 진(秦)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과, 한초(漢楚)의 흥망, 그리고 진(秦)에서 한초(漢初)에 걸쳐 한자(漢字)의 일대 변혁이 있어 짧은 기간 동안 학문적 단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나라 이전의 서적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한나라 때는 유교가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