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에 대한 반발로 두 가지 반응이 대두하였는데, 그것은 곧 합리주의와 경건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정통주의의 지적 기반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며 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위력을 떨쳤다. 그러나 합리주의는 18세기가 되기까지 독일에서는 큰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고, 대신 정통주의에 대한 또 다
Ⅰ. 신학의 의미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절대적인 신학,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고정된 형태의 신학을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부족한 인간의 통찰과 언어를 통하여 특정한 시대 속에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그 시대와 상황에
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상실된 ‘신학의 제목’을 되찾으려는 새로운 신학 모색운동의 하나였다. 이들의 주장은 소위 19세기적 “강단신학”(Schuldogmatik)의 추상적, 이론적 신학에 대하여 “유한이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라는 명제하에, 주로 스위스의 목사들(K. Barth, E. Thurneysen, E. Brunner)과 독일의 소
주의자들의 은혜의 교리도 만족스런 해답을 주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토마스주의자인 동시에 신비주의자였던 그의 고해신부 슈타우피츠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루터에게 자신의 피택여부를 놓고 걱정하기보다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묵상할 것과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