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왕유
-중국 당(唐)의 시인이자 화가
-분주(汾州, 지금의 山西省 汾陽) 출신
-자(字)는 마힐(摩詰) : 사마(司馬) 벼슬을 하던 왕처렴(王處廉)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도였다. 때문에 왕유는 어려서부터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그의 이름인 유(維)와 자(字)인 마힐(摩詰)
왕유와 같은 지음은 드물다.
祗應守索幕(지응수삭막) 다만 마땅히 고요함을 지키며
還掩故園扉(환엄고원비) 고향집 사립문 닫아두고 살려네
-> 세상에는 미련이 없으니 조용히 살겠다.
但去莫復問(단거막부문) 떠나시오! 더는 묻지 않으리다.
-> 너무나 아쉽지만 그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
시인으로는 한유(韓愈)와 백거이(白居易)를 대표적으로 든다. 한유는 기험(奇
險) ·호방(豪放)한 장대한 미(美)를 사랑하였고, 백거이는 평이하고 찬찬한 표현으로 《장한가(長恨歌)》,《비파행(琵琶行)》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신악부(新樂府)》라고 하는 사회시(社會詩)를 창시(創始)하여 당대를
왕유는 성당시대의 산수시파로 유명하다. 우선 <중국문학사>에 나온 왕유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왕유(701-761)는 자가 마힐(摩詰)이며 하동 지금의 산서성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어 10대에 이미 좋은 시들을 남기고 있다. 개원 9년(721) 21세 때 진사가 된 이후, 벼슬길에 올라 천보 말엽
시험의 1과에서는 시와 부를 과제로 하였다. 작시법의 규칙은 이 두 가지에서 비롯하였다.
710년 - 765년에는 성당이라 부른다.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이백, 두보를 비롯하여 잠삼, 고적, 왕유, 맹호연 등 뛰어난 시인들이 나와 많은 작품을 남기었다. 이백은 출신은 알 수 없으나 쾌락과 환상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