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 청나라의 ‘상민수륙무역장정’
1930년대 초까지 거주 중국인 수 : 약 6만명
1931년 만보산 사건+항일전쟁으로 쇠퇴
해방 이후 - 외국인에 대한 배타정책: 부동산 소유제한, 상업(요식) 활동 제한
한국 화교의 특징
대부분 산둥성(山東省) 출신
중국 전통문화의 확고한 계승 및 보존
화교의 사회적 공간: 인천 차이나타운 네트워크, 화교 청소년들의 정체성 고민: 차이나타운 청소년 이야기, 사할린 귀환동포의 디아스포라: 안산 고향마을의 에스닉 코리안, 한국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와 생활세계로 되어 있다.
2부는 다문화 커뮤니티의 이해로 다문화 특구 공
화교들은 대부분이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으며 한국의 서민 계층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왕래도 잦다. 한국인들은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은 편이지만 중국인(화교)의 특성을 잘 알고 있지는 않다. 한국인들은 어디 출신이건 중국인이기만 하면 모두 중국의 풍속과 문화에 깊이 젖어있다고 생
중국계들의 상업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
1980년대 중반 이후 : 외국인들의 직접 투자가 활발할 때는 이들과 합작으로 경제적 확대를 지속세계속의 화교(미국)
태평양 건너 가장 먼저 들어온 아시아인은 중국화교
미국의 경우1848년부터 서부 대개발로 중국인 대거 유입
금광개발, 골드 러쉬,
차이나타운이 현재 전국으로 전파된 중국음식점, 그리고 한국화 된 중국음식점 ‘중국집’과 ‘자장면’의 발상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중국 유학생들이 모인 대학가, 노동자들이 모인 구로, 가리봉 지역 등 자연발생적인 차이나타운을 통하여 중국의 문화 전파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