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쿠빌라이 정권의 탄생
1251. 형 몽케가 4대 칸의 자리에 오르자 북중국 방면으로 파견됨
1260. 쿠릴타이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칸이 됨
1264. 막내아우 아리크부카와의 칸 쟁탈전에서 승리
1271. 국호를 대원이라 함
1279.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함
2. 쿠빌라이의 정치정책
중
중국인들은 공자 시대 이후 티벳인들을 비문명화 된 야만인으로 간주했으며, 티벳인들은 중국인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주는 민족에 속하였고, 중국이 만리장성을 건축했던 이유 중 하나가 티벳이었다. 8세기에 티벳군이 그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을 정복하기도 했었다.
쿠빌라이칸과 같은 몽골
1. 티베트의 역사와 중국 침략
과거 티베트 지역에는 거대 왕국인 토번이 있었다. 토번의 티베트족은 중국과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하지만 13세기 중앙아시아지역의 몽골의 세력이 급속도로 커지자 원나라의 몽케칸은 군대를 파견하여 티베트 전역을 장악하고 세조 쿠빌라이칸은 티베트 라마교의
(1) 쿠빌라이와 원의 건국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수립하면서 몽골 제국은 유목민과 농경도시민이 공존할 수 있는 거대한 건조농업지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복왕조로 변모했다. 처음에 쿠빌라이는 몽골 제국 제4대 칸인 몽케로부터 중국 방면의 국정을 담당하는 대총독으로 임명되었다. 평소에
칸이라고 부르고 기도한다. 그들은 해를 달의 모친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태양이 달에게 빛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대로라면 몽골인들은 태양보다 달을 더 소중히 여겨 ‘위대한 칸’이라고 불렀던 것이며, 이는 옛 몽골 시가에서 <태양이 어머니이고 달이 아버지이다, 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