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중세이단 – 카타리파, 발도파카타리파
온건한 이원론과 절대적인 이원론의 교리적 분열이 심화되었고, 결과로 13세기를 지나면서 세력이 약화됨.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은 오직 '콘솔라멘툼'(안수에 의한 성령 세례)에 의해서 주어짐
-콘솔라멘툼을 베푸는 데에는 남녀의 차별이
Ⅰ. 새로운 종교적 운동들
교회의 타락
복음주의적 각성이 필요해짐
사도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
사도적인 청빈 – 극기 , 극도의 청빈 생활
세속화되지 않기 위해 사회로부터 고립
금욕주의도 다시 등장
시토 수도회
12세기를 지배
단순한 생활, 음식과 의복에 엄격
13세기가 끝날
1. 들어가며
‘이단’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이단’이라고 규정되었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 관한 ‘이단’이 등장하고 그에 대한 탄압이 있었던 중세 유럽에서는 당시 교회 기득권 계층의 필요에 있어 이단으로 내몰려진 집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
「장미의 이름」의 시대배경은 14세기로, 때는 이단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달구어지던 시대이다. 프란체스코 회의 청빈 교리 논쟁을 중심으로 교황과 황제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월리엄 수도사는 이러한 논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이단에 대한 자신의 입장 또한 언급한다. 당
Ⅰ. 11~12세기- 새로운 각성의 시기
14세기에서 16세기에 나타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일련의 의식적 각성은 유럽 세계가‘중세에서 ‘근세라는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의식적 각성은 비단 그 시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서양 중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