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禪宗)과 교종(敎宗) 두 종파가 고려 불교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지눌의 선배이자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義天)은 선종 슬려들을 천태종에 흡수시키는 방법으로 두 종파를 통합하려고 하였다. 한편 불교는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사원은 대 규모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런 연
불교세력이 대립하고 투쟁했지만 결국 최충헌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최충헌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주로 교종 쪽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라고 판단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불교세력의 힘을 빼기 위해, 그 동안 불교계에서 비주류이고, 정치와 관련이 적었던 선종 족에 눈을 돌리게 된
불교계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신집권에 의해서 개경문벌과 결탁된 교종세력을 약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선종은 출신성분이나 지원세력으로 보아 그들의 세속적 기반은 교종에 비하여 낮은 신분 출신이었으므로 문벌 자제가 아닌 점에서 무신집권자들과 밀접하였으며, 이들은 서로 지원함으로써
불교계 변화 내용을 살펴보면 교종에 속하는 華嚴宗과 法相宗, 그리고 禪宗에 속하는 天台宗과 曹溪宗 등 대표적인 종파 모두가 각기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불교계의 전면적인 개편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먼저 화엄종과 법상종은 무인세력과 항쟁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 교단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
지눌이 겪어야만 했던 고려 중기의 격심한 사회 변동과 그가 몸 담았던 고려 불교계의 여러 문제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고려의 국내의 정세는 급격한 변동기에 처하게 된다. 지눌은 의종 12년(1158)부터 희종 6년(1210)까지 4대에 걸쳐 53년의 길지 않은 생애를 살았지만, 전 고려사를 통하여 이 기간은 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