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인구 증가가 생산성 증대에 한 바탕이 되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이앙법의 보급이다. 이앙법은 농업 노동력을 절감하고 생산량을 증대시킨다. 지금은 논농사라면 당연히 이앙법을 한다고 생각되지만, 이 방식은 수리시설 확충이 전제되지 않으
제1절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한 국가에 있어서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은 국가 유지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를 살펴보면 정치적 잣대는 성리학이었고 경제에 있어서는 농업과 더불어 상공업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싹트고 있었다. 조선시대 후기를 크게 보면 경제적으로 번영하
정읍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간 곳은 ‘동학혁명기념관’ 이었다. 생각보다 교통편이 불편해서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무척이나 비싼 요금 탓에 구석구석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없었다. 여유가 있으면 꽤나 여러 군데를 돌아보고 선운사나 내장산 정도까지 들려보려고 했었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인하여
벼를 재배하였다고 기록하였고, 삼국사기에서도 ‘남쪽 늪지대에 도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하여 4세기에는 서해안지역에서 대규모의 저수지가, 또 6세기에는 동해안지역에서 대규모 관개시설이 축조되었다. 이 시대의 벼농사는 저습지대를 중심으로 한 원시적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