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李懷光見了陸贄, 力陳三害, 第一害是得克京城, 吐蕃縱兵大掠;
각설이회광견료육지 력진삼해 제일해시득극경성 토번종병대략
각설하고 이회광은 육지를 보고 힘써 3가지 해를 진술하니 첫째는 경성을 얻고 토번이 병사를 놔서 크게 노략질함이다.
第二害是吐蕃建功, 必求厚賞, 京城已遭寇掠,
소설은 주로 제국신문, 매일신보 등 신문을 통해 발표하였으며, 초기에 쓴 몇 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이 국문으로 씌어져 있다. 그는 1910년대 후반까지 창작활동을 계속하였으며, 1927년 5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2. 사회활동과 윤리의식
이해조가 의관의 자리를 떠나 언론계에 나선 시기는 1
소설은 같은 전쟁 소설인 <임진록(壬辰錄)>이 일본을 향한 복수를 비현실적인 기적으로 나타낸 것과 마찬가지로 청나라에서 받은 치욕을 작품적인 공상에서 풀어보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격이 되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유례 없는 치욕적사건으로, 정치적·경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