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용이 기뻐하여 이내 아들 일곱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가 왕정을 보좌하였는데 이름을 처용이라 했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그의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또한 급간의 관직을 주었다.
행위를 연출시켜도 할 수 없는 <인간>그대로의 동작밖에 없다. 이들의 진솔한 행위나 정신을 수면으로 기준한다면 우리들 인간 <짓거리>들의 해발 높이는 얼마나 가소로운 것일까? 그것은 억지로 웃게 하는 웃음과 웃지 않고는 파이프가 터져 버릴 것 같은 웃음의 차이다.
우리들 인간은 인간 이상의 것
처용가는 앞에서 말했듯이 민속 신앙적 관점, 불교 신앙적 관점, 무․불합적 관점, 역사 사실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 등 학자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처용랑망해사>의 모호성과 학자들의 편협한 해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조는 처용가의 원문을 토대
〈들어가며〉
‘처용’은 그 의미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기 때문에 신라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처용’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처용랑망해사〉조의 기록은 문맥 안에 역사적인 사실과 아울러 신화적인 상징 및 은유적 표현을 함께 가지
Ⅰ. 서론)
처용가의 연구는 향가해독이라는 어학적 연구에서 출발하여 문학적 측면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한편, 처용가는 주석작업을 제외하고는 說話와 더불어 연구되었으며 이점에서 처용가 연구란 넓은 의미에서 설화의 연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연구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