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청과 조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열강이 청에게 그에 대한 설명과 입장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열강은 조선의 속방 여부보다는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막는데 주력했다. 이에 대해 청은 “속방의 내치, 외교에는 간여하지 않는다.”는 종속관계를 내세우면서도, 전쟁이 일어날 경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일본 내의 내전을 보면서 우리도 국사교과서를 반성적?비판적 입장에서 성찰해야만 함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한다면, 지난 고난의 역사에서 배태된 저항민족주의에서 기인하는 배타성과 우월의식 같은 우리 안의 특수를 어떻게 남의 눈을 감당
청일전쟁 이전의 청은 서구 열강의 교역의 대상으로서 주목을 받았으나, 전쟁 이후에는 본격적인 침략적 분할의 대상이 되어 제국주의 열강의 패권다툼의 먹이가 된다. 청일전쟁은 조선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그 쟁탈의 무대가 한반도였으며, 가장 큰 피해자도 조선이었다.
본
1. 청일전쟁이 역사적으로 지니는 의미
청일전쟁은 1894~1895년 간 조선의 지배를 둘러싸고 청과 일본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끝나게 되고 그 대신 신흥 일본을 이 지역의 패자로 등장시킨 전쟁이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에서 각축하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
조선은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여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가운데 가장 뒤늦게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인 조약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그후로도 조선왕조는 역사적으로 그 기능이 이미 소멸한 조공체제를 청산하지 못하였다.
청나라가 1895년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에서 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