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공통의 역사기억을 갖는 일본 시민사회와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이다. 특히 한?일 두 나라 시민사회는 2001년 역사기억을 둘러싼 국제전과 내전이 벌어졌을 때 이미 왜곡세력에 맞서기 위해 손을 맞잡은 경험이 있다. 2001년 후소샤교과서 채택을 저지한 일본 풀뿌
일본에 대한 기억은 자랑스러운 ꡒ영광ꡓ의 역사이지 반성해야 역사가 아닌 것이다. 침략의 역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참회하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역사왜곡 세력의 움직임이 지속되어 왔으며, 그 위세는 두 차례에 걸친 후소샤교과서 파동에서 보이듯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왜 일본에서는
교과서 파동의 재현은 `밀월 속에 싹튼 일본 측의 배반`으로 인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건데 한일관계에 있어서 과거사 마찰은 90년대 이래 그 심도와 빈도에 있어서 더욱 격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의 종언과 공산권의 몰락에 의해 종래 한일관계의 구심력으로 작
일본 황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진상품을 바치는 신라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신라와 백제 사이에 ‘임나’란 지명을 도드라지게 표기하며 임나일본부설을 강조하고 있다.
삼한조공을 묘사한 삽화에서는 신라, 고려, 백제 등의 국가 이름을 누차 언급한다. 일본의 소학교 국사 교과서는 1904년부터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무역과 정보수집에 종사하였다.
통신사를 쇼군직 취임시 파견하는 사절로 기술함으로써 일본 우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손승철(「일본역사교과서 고려,조선시대 기술의 왜곡실태 분석」)에 따르면, 일본학계가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보는 주된 이유는 일본의 막부 쇼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