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를 살피면서 가계를 잘못 추정한 것 어숙권의 큰할아버지인 어세겸을 친조부로 오해하여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 있었고, 책의 저작 년대를 추정하는데서도 크게 진상과 어긋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수인, 앞의 논문, p.147.
이수인의 「패관잡기 연구 시론」 논문에서는 『대동야승』
Ⅰ. 신숙주의 생애
신숙주는 자 범옹(泛翁), 본관 고령으로 1417년(태종 17) 6월 13일에 출생하였다. 호를 보한재(保閒齋) 또는 희현당(希賢堂)이라 하였다. 고령 신씨는 원래 고령의 향리(鄕吏)였으나, 그의 7대조로 시조인 성용(成用)이 문과에 급제하여 일가를 이룬 뒤로 아버지 장(檣)에 이르는 선대가
조광조 趙光祖
1482(성종 13) ~ 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한성출생.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오사화로 화를 입고 회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
<다산 정약용의 교육>
1.생애&저술&사상
정약용은 영조 38년 서울 근교의 마현에서 태어났다. 자는 미용, 호는 다산 혹은 사암, 당호는 여유당, 시호는 문도 이다.
14세에 호조좌랑으로 등용되는 부친을 따라 서울에 와서, 16세에 성호의 글을 읽고 실학에 심취하게 되었고, 23세에는 이벽으로부터 그
Ⅰ. 조광조의 생애
조광조는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4세때 부친이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자 임지에 따라가 그곳에서 몇 해를 지냈는데 17때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김굉필이 그곳으로 유배를 옴으로써 일찍이 김굉필로부터 학문하는 방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