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은 895년 전국적인 내란의 와중에서 사찰을 지키다가 전몰한 승병들을 위하여 만든 해인사(海印寺)경내의 한 공양탑(供養塔)의 기문(記文)에서 “당토(唐土)에서 벌어진 병(兵)·흉(凶)두가지 재앙이 서쪽 당에서는 멈추었고, 동쪽 신라로 옮겨져 와서 그 험악한 중에도 더욱 험악하여 굶어서 죽고
1. 나말여초 전기소설의 창작상황
1) 나말여초의 전기소설로서 현전하는 작품
우선 <최치원>, <조신전>, <호원>(일명 <김현감호>) 등을 들 수 있다. <최치원>과 <호원>은 원래 ■■수이전■■(殊異傳)이라는 이야기책에 실려 있던 작품이다. ■■수이전■■이라는 책은 일실(逸失)되었지만 그 몇 편의 글
소설 담당층의 형성조건을 보아도 나말여초의 지식인적 상황에서 소설 작가 출현 동기를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본 보고서는 나말여초의 전기소설을 앞세워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와 『금오신화』 효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 비교해보면서 나의 견해를 정리해
소설이 비롯된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고, 금오신화를 최초의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의 주장은 우리 소설사의 흐름을 동아시아 한문 문화권의 공통 서사장르인 전기가 지니고 있는 여러 특질들과 관련지으면서 그 한국적 초기 형태를 나말 여초의 몇몇 작품들에서 찾고,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