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기상학에 관한 연구들은 우리 고유의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고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문기상학에서는 그 측정기구가 독자성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인데 특히 기상학에서의 독자적 특성은 그 측정기구의 발명과 측정 기록들로 볼 때 여실히 증명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보
측우기가 너무 크면 빗물의 양이 바로 증발하고, 너무 좁으면 빗물을 모으기가 힘들어 적정크기를 도출한 것이다. 측우기 입구가 지면에서 낮으면 지면에서 튀어 올라 빗물이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고, 그릇 안에 빗물이 튀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있어서 정확한 관측이 힘들었다. 따라서 측우기의 높이
조선 농업의 기본서로 자리매김했으며, 성종 때 간행된 내사본은 일본으로 전달돼 일본 농업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3) 간의대
경복궁의 경회루 북쪽에 설치된 석축 간의대는 천문을 관측하여 별의 운행과 변화를 기록하고 그 원리를 파악하는 곳으로 높이 6.3미터, 길이 9.1미터, 너비 6.6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며, 과학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앙부일구’사진>
(5)간의(簡儀): 세종19년(1437년)
천체 관측을 위한 기구로, 1276년 중국 원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으며, 세종 때 원나라의 제도를 본떠 이천, 장영실 등이 대·소간의를 만들었다. 1437년(세종19년) 오
세종대왕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중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분으로서 과학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장영실로 하여금 비가 내리는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를 제작하게 하였고(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 궁중에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