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몽떼규대학으로 전학하였다. 이 대학의 학장 쟝 스탕동은 고대 수도원의 영향을 받아 몽떼규대학을 교육하는 수도원, 종교적인 대학, ꡒ엄격한 규율 밑에서 사제와 개혁적인 수사가 될 준비를 하는 가난한 성직자의 공동체ꡓ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즉 이 학교는 장차 신학도가 되기에
칼빈은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 자매들이 잔인한 박해를 받는 것을 차마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들을 변호하기 위해 그는 조용한 바젤 시에서 붓을 들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사상 가장 유명한 기독교 강요가 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 문헌 중 가장 귀중하고 영원히 남아야 할 책으로
칼빈은 종교 개혁의 선두 주자로서 그들이 내세운 교회론이 지금 오늘날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비스(PaulD.L.Avis)는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에 있어서 교회 라는 저작에서 루터와 칼빈을다음과 같이 대비시켰다. 루터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복음의 순수성에
칼빈(Calvin : 1509∼1564) 등이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나 프랑스의 종교개혁은 그 내용이 성직자의 결혼, 육식의 자유, 화상(畵像)의 철거 등 다소 휴머니즘적인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교회음악에 있어서도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서른여섯 곡의 개신교 찬송가를 작곡할 정도로 교회 음악가이기도 했다.
루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회퍼, 하비콕스, 존 로빈슨, 슐리이어마허,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등의 현대 자유주의의 신학사상의 도전은 끊임없이 한국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교회론은 한국의 전통적인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 전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