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을 정리한 것이다.
1)칼빈의 교회론: [기독교 강요]초판과 최종판 비교
(1) [기독교 강요]초판(1536년)
첫째, 칼빈은 [기독교 강요]초판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다. 그는 보편교회란 ‘선택 받은 자의 전체수’라고 정의하고 이 보편교회는 그리스
칼빈이 그 서문을 써냈는데 이것이 칼빈의 첫 출판물이었다. 이 대학에서 칼빈은 법학 외에 이 학교로 초빙되어 온 볼라르로부터 계속 헬라어를 배웠다. 1532년 그는 오를레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법학 지식은 나중에 자신의 제네바에서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1531년 5월말에 교
사역의 모습도 다양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교회의 조직과 사역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교회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같은 걸음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의 종교의 전반적인 흐름은 종교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뉴에이지운동
칼빈은 그곳 ‘콜레지 라 마르세’ 대학에 다니면서 당시 라틴어의 최고 권위자이던 마투린 코르디에(Mathurin Cordier)에게서 라틴어를 배운다. 그리고 그 후 보다 학술적이며, 종교적인 ‘콜레지 드 몽테이유(College de Montaigu)' 대학으로 전학하여 1527년까지 수학하고 1528년 3월에 칼빈은 부친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주목하였다. 종교 개혁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와 별도로 교회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구속론과 성령론을 교회론보다 앞서 논의하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종교 개혁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교회론을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