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연방 간 평화협정 체결을 맺었다. 이로써 코소보 분쟁은 종식되는 듯 보였으나, 평화유지군의 코소보 진주에도 불구하고 동 지역에서 간헐적인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코소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알바니아계의 세르비아계에 대한 역 테러가 자행됨으로써 밀로세비치가 퇴진하고 코소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으로 건국되었으며, 1929년에는〔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유고슬라비아연방 공화국〕으로, 1963년에는〔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탈바꿈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유고는 티토의 화합적 리더십과 카리스마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수립하지만 2006년 각각 독립국으로 해체한다.
코소보 지역에 대한 양국의 입장
세르비아인들은 자신들이 6-7세기에 발칸 지역으로 이주할 당시 코소보 지역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알바니아인들은 자신들이 고대 그
유고연방과의 관계개선 방침을 철회하고 EU 의장국인 영국도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만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신 유고연방은 코소보문제를 순수한 국내문제로 간주하여 국제사회의 개입 및 코소보의 분리 독립을 거부하였으며, 이에 대해 코소보알바니아인은 국제사회의 적극적
세르비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는 제 2차 세게대전 이래 최초로 치뤄진 세르비아의 민주적인 선거방식에 의한 것이었다. 1992년 밀로세비치는 세르비아의 대통령으로 재선된다. 이 때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사회당을 창당하게 되고, 그 당수로 취임하게 된다. 1997년 밀로세비치는 마침내 유고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