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전성기의 뛰어난 걸작이다. 불교조각의 카테고리 가운데 비교적 큰 발전이 없었던 부조 미술에 드물게 예술적으로 뛰어난 창조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동양문화에 큰 영향을 준 중국 당시대 미술의 특징을 보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양하게 전개된 조각 양식,
조각솜씨와 금속공예품에 남아 있는 세공솜씨는 통일신라의 미술이 우리나라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우수했던 것으로 평가받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와 같이 불교미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던 통일신라의 문화는 잦은 왕위 쟁탈전과 지방 호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8세기 말
중문탑금당강당이 중심축 위에 배치되고, 중문 좌우로 펼쳐진 회랑이 당탑(堂塔)을 둘러싸고 또 강당으로 연결시킨 1탑 1금당식이 특징이다. 신라 역시 백제의 영향으로 1탑 1금당식의 가람이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는 불국사 다보탑 등 뛰어난 건조물이 많은 불교건축의 황금기로 경주
통일 후 신라는 국내에서 경쟁 없이 평화를 구가하며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였던 당과 빈번한 교류를 하여 당에 못지않은 문화의 꽃을 피웠다. 본격적인 한학의 수용을 보았고 불교는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여 고승들의 국제적 활약도 있었다. 불교의 발전은 불교미술의 발전을 초래하여 불상조각
통일신라시대에는 그림을 다루는 전채서라는 관청이 있었으며, 당나라에 유학 갔던 김충의, 불교화가 청화, 홍계 등이 활약했다.
조소에 있어서는, 서양의 그리스가 대리석이 많아서 많은 조각품을 만들었듯이 서라벌의 많은 화강암은 고신라의 조각미술을 번창하게 하였다. 신라의 불상 조각들은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