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에는 그림을 다루는 전채서라는 관청이 있었으며, 당나라에 유학 갔던 김충의, 불교화가 청화, 홍계 등이 활약했다.
조소에 있어서는, 서양의 그리스가 대리석이 많아서 많은 조각품을 만들었듯이 서라벌의 많은 화강암은 고신라의 조각미술을 번창하게 하였다. 신라의 불상 조각들은 미
시대의 석탑은 정돈된 형태를 중시하지 않는 양식이 유행하여 안정감·정돈미가 무시되고, 탑의 형식이 다양화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1020년 현종 때 만든 신라계통의 양식인 현화사 7층석탑, 광종 때 만든 송나라 때의 모형인 월정사 8각 9층석탑, 충목왕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목조형 양
.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전래되었던 북송의 그림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중기에는 곽희(郭熙)의 화풍과 문인화론이 유입되어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도화원(圖畵院)의 설립과 이령(李寧)을 비롯한 화원들의 활약, 명승명소도 계열의 실경산수화 전통이 형성되었다.
시대적 배경에서 한문(漢文)에 대한 소양이 지식인의 제1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唐)나라는 인도에서 받아들인 불교에서 문화의 커다란 맥락을 찾아갔는데, 이것 또한 중세전기 제1기 문학에 해당하는 삼국이나 남북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에게 영향을 줌으로서 그들도 불교에서 보편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