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자신이든 퇴계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든, 아니면 더 넓혀 세상의 누구이든 간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자명한 실천명제로서 그들 앞에 놓여 있다. 고인의 길을 따르는 배움의 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인 것이다.
其四
당시(當時)에 녀던 길흘 몃 할을 버려 두고
어
㉣ 방황과 홀로서기
율곡은 나이 열 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문장이 날로 성취되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기대 못지않게 그의 학문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자신을 알아준 문장가 송인(宋寅)에게 보낸 다음 글은 그의 이러한 갈등을 단적으
5) 문학사적 의의
퇴계의 문학에 대한 생각은 한시뿐만 아니라 시조의 창작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한시와 시조가 성정을 기르는 데 같은 구실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조 <도산십이곡>의 발문은 그의 시가에 대한 생각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보면
Ⅰ. 序 言
퇴계는 동방의 儒宗으로 숭앙되어 그의 학덕이 조선조 儒學史上에 지
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멀리 현해탄 건너 일본학계에까지 크게
숭상되었던 東方大賢임은 말할 것도 없다.
퇴계1)는 우주나 인심의 본체를 理氣二元으로 생각하되, 소위 理氣
互發說과 사단은 理發氣隨之요 칠
퇴계·율곡시대에 이르러 주자학적 이념에 입각한 도덕주의 문학론이 득세.
처사적 문학이 시대의 주류로 올라섬에 따라 관료적 문학도 도학주의에 순종·근엄한 문장으로 심지어 도학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짐.
뚜렷한 사조를 이룬 것은 사림파의 처사적인 문학이었음. 주자학이 지배적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