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자의 가치관과 철학이 현대 교육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귀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근대 교육학자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퇴계이황일 것이다.
이황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그 명성은 후대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어 아직도 많은 후학들이 그들의 사상을
퇴계는 배우는 자와 더불어 강론하다가 의심나는 곳에 이르면 자기의 소견을 고집하지 않고 반드시 널리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자로서의 훌륭한 면모를 지닌 이황의 교육사상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목적의 본령을 윤리적으로 확립하고 문예나
퇴계는 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이었다. 그래서 여러 자녀를 키우는데 남달리 고생을 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였고 더구나 교육에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때 맏형만이 결혼을 했었고 나머지 6남매 모두 어린 것들이라 이들을 양육하는데 홀어머니 손으로는 힘에 겨운 일이었다. 몸소 농사를 짓고 양잠
Ⅰ. 서론
퇴계의 철학 사상은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사단칠정 논쟁에서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퇴계가 서울에 살던 53세 때 이웃에 사는 추만 정지운이「천명도설」을 지어 보여주었는데, 퇴계는「천명도설」의 내용 중 사단칠정에 관한 부분을 개정한 데서 비롯된다.
), 의, 해, 증, 황 등 5형제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막내이다.
(2) 초년기 : 출생에서 33세 때까지 유교경전을 연구하는데 열중하였던 수학기
퇴계의 부친은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퇴계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