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피카소는 다양한 면을 지닌 미술가이다. 즉 그는 입체파의 창시자 중 한사람이었고, 때로는 대상을 직접 재현하는 화법에 나들이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가장 전형적인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의 가장 일괄된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피카소와 그의 유파 전체를
피카소가 맡는 다는 계획아래 진행되었지만 이 첫 시도는 과감히 실패하고 만다. 이는 콕토의 이야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데 창조자 피카소 1권14. -예술과 도덕의 새로운 정신 p. 342 피에르 덱스(Daix, Pierre) 지음. 김남주 옮김. 한 길 아트
‘퍼레이드’의 첫 공연(입체주의 무대), 흥행사들, 재즈풍의 음
미술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18세기에는 아직 서툴지만 감성(感性)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비해 19세기는 정열에 차고 소용돌이치는 감성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19세기는 아직 감성을 그 어떤 논리적 명징성(明徵性)과도 완전히 격리시킬 용기를 갖지 못했다. 초현실주의는 그 시대와 격
초현실주의를 표방한 단체들이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진취적인 미술운동이나 그 화풍이 일본에 도입되었을 때는 일본 특유한 인식 개념으로서 신감각의 종합 주의적으로 모든 경향을 대범하게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시기에 <자유미술가협회>가 1937년에, <미술문화협회>가 19
피카소 옆에 등장한 여자가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도라 마르이다. 아마 피카소의 여인 중 가장 지적인 인물일 것이다.
도라 마르를 만날 때는 그의 곁에 마리 테레즈도 있을 때다. 파카소는 두 여자 사이를 오갔다. 마리 테레즈는 프랑스 출신으로 금발에, 관능적인 몸매에, 청춘의 매력이 넘치는 여인이